토너먼트(Tournament)와 프리랜서(freelancer)의 유래와 역사

토너먼트(Tournament)와 프리랜서(freelancer)의 유래와 역사





토너먼트방식(Tournament)이란 참가자(또는 팀) 전원이 돌아가면서 경기를  갖는 제도인   `리그(league)`와 달리, 일대일로 겨루면서 진 상대를 탈락시키는  제도를 Tournament라고 하는데요, 이 토너먼트는  원래 중세 유럽 기사들의 무예대결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중세시대 토너먼트 대회의 시합은 주로 Melee(혼전)와 Jousting(마상창술시합)으로 나뉩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Jousting인데, 실은 초창기의 토너먼트는 Melee 방식의 시합이었고 Jousting이 토너먼트의 메인을 차지하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토너먼트는 카롤링거 왕조에서 밀리터리 게임으로 시작된 것으로 모든 전투원들이 참여하여 다중이 서로 추격하고 회피하는 Melee(혼전) 방식. 즉 기마병인 참가원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서 상대방 팀원을 넘어뜨리거나 전열을 부수는 방식으로 상대팀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죠,,
 
Melee(혼전)는 이처럼 기사들이 두 편으로 팀을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모든 기사들이 모든 기사들을 상대로 하여(fighting as a free-for-all) 최후의 승리자가 가려질 때까지 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Melee(혼전) 시합에서 참가자들이 상대편 기사를 잡게 되면 몸값을 요구할 수 있었고 이것은 무예가 뛰어난 기사들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남는 비즈니스였던 것이죠,
최초의 Jousting(마상창술시합)은 1066년에 개최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때만 해도 Jousting에 참가한 기사들은 곧바로 Melee(혼전)에 참가하여 상대 기사들의 몸값을 휩쓸어가기 위해 혼전을 거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Jousting(마상창술시합)은 122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토너먼트의 일부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합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당시 저술가는 "고귀한 기사들은 토너먼트보다 Jousting에 보다 관심이 있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 시대의 기사들은 자신이 섬기는 영주나 군주를 위해 Jousting이나 토너먼트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어떠한 영주나 군주도 섬기지 않고 자신에게 높은 금액의 보수를 제시하는 영주를 위해 시합에 참여하는 기사들도 생겨났고 이들을 프리랜서(freelancers)라 불렀습니다.

사실은 당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성공적인 기사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시대의 영주들은 대회의 흥행 또는 자신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이러한 프리랜서를 고용하곤 하였죠.
이처럼 자신을 고용해 준 영주 또는 군주들에게 빛나는 승리의 영광을 안겨준 기사들은 단순히 돈과 명예만 얻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군주들로부터 작위와 영지까지 하사받는 경우도 생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사들은 물론 토너먼트에서만 싸우는 것은 아니었는데.  중세시대에는 법정 분쟁으로 재판을 벌어지면 재판장의 판결을 거부하고 결투로 유무죄를 가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고, 이러한 결투에 대신 싸워줄 대전사(champion)를 구하여 내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세 기사들에게는 반드시 토너먼트 경기장뿐만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 자체가 치열한 경기장이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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