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VS 환타, 2차세계대전과 탄산음료의 탄생

코카콜라 VS 환타, 2차세계대전과 탄산음료의 탄생






지금처럼 타는듯한 무더운 날에는 시원한 청량음료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시죠.
청량음료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Fanta가 전쟁때문에 탄생한 음료란 거 알고 계셨나요?

2차 대전 직전의 독일은 미국의 뒤를 위어 세계 2위의 코카콜라 소비국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코카콜라 담당이었던 막스 카이트의 정, 관계에 걸친 영향력에 힘입어 코카콜라는 유럽 전역, 특히 독일에서 급속도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노동자 들에게 알콜 음료 대신 공급되는 대체 음료로 알콜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가들에게는 코카콜라를 적극 지지할만한 요인이 되었고요.
막스 카이트는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았다고 하지만,단 한명, 당시 코카콜라의 총수 로버트 우드러프에게만은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는 유일하게 존경했다는 로버트 우드러프에게 히틀러의 점령지에서 코카콜라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결국 그는 '환타' 라는 대체품으로 다짐을 현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1940년이 되기 전, 코카콜라의 유럽 부문은 코카콜라를 생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로에 놓입니다. 코카콜라의 원액을 만들기 위한 핵심 물질, '머천다이즈5' 와 '7X'의 공급에 차질이 생겨서였죠.







영국의 해상봉쇄로 인해 이 두 핵심 물질을 코카콜라 유럽 부문에 공급할 수 없게 되었고,
코카콜라 본사에서는 우회 루트를 비롯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어떻게든 이 두 핵심 물질을 유럽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같은 연합국의 주축인 영국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일을 무리하게 추진할 수는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원액 제조법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인 화학자 윌리엄 히스를 유럽에 보내서까지 (몇년 전 이탈리아에 있을 당시 이미 방법을 만들어서 넘겨줬다고도 하지만)
'머천다이즈 5' 를 유럽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조치는 했습니다만, 문제는 '7X' 에서 발생했습니다. 1940년 1월에 막스 카이트가 보유하고 있는 '7X' 는 단지 5개월 판매량에 해당하는 분량뿐.

여기서 막스 카이트는 결단을 내립니다.
코카콜라를 대체할 수 있는, 아니 이 힘든 시기만이라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 그는 회사의 화학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코카콜라와 같이 카페인을 기반으로 한,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탄산음료를 개발하라고. 특히 다른 식품회사에서 식품 제조 후 남은 찌꺼기들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해 생산비 절감 효과까지 가져온 구세주 같은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음료는 '머천다이즈 5' 를 쓰는데까지는 코카콜라와 같았고, 단지 '7X' 가 빠지고
기타 재료를 이용해서 향을 낸 음료였고, 막스 카이트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어 이 제품의 이름을 독일어 'Fantasie' 에서 따서 Fanta라고 붙이게 되었습니다.
유럽 각 지역의 코카콜라 지사에서는 이 음료의 카피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결국 코카콜라는 2차 대전 히틀러의 치하에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차 대전 후, 'Fanta'는 2차 대전 당시 코카콜라의 어두운 면을 연상하게 하는 제품이라 하여 제품 판매가 중단되고 브랜드도 버려졌지만,이후 코카콜라의 제품 다각화와 유럽 부문의 관련자들의 요청 등이 받아들여져 제품 상품등록 시효 말소가 된 1955년 이탈리아에서 재출시되고, 1960년에는 전 세계로 제품이 출시되며 국내에는 1968년에서야 처음 생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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