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542.12.08 ~ 1587.02.08), 스코틀랜드 비운의 여왕이 태어나다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542.12.08 ~ 1587.02.08), 스코틀랜드 비운의 여왕이 태어나다





제임스 4세는 죽기 전, 유언으로 왕비인 마가렛 튜더가 재혼하기 전까지 아들의 섭정이 되도록 일렀습니다. 그러나 친(親)프랑스파(派) 세력은 마가렛 튜더가 헨리 8세의 친누이였기에 아무래도 잉글랜드에 우호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죠. 


때마침, 마가렛 튜더가 앵거스의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와 재혼을 합니다. 이에 1515년, 친 프랑스파 세력은 자신들이 밀고 있던 올버니 공작으로 하여금 프랑스군을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들어와 실권을 장악하게 만듭니다. 주도면밀한 올버니 공작은 프랑스-스코틀랜드 연합군으로 하여금 잉글랜드와의 국경지대를 효과적으로 방비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올버니 공작이 잠시 프랑스에 가있는 동안, 마가렛 튜더가 친 잉글랜드파 귀족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올버니 정권을 전복시키고, 마침 12살이 된 아들 제임스 5세로 하여금 친정(親政)하게끔 만들어놓습니다.

그러나 말이 친정이지, 실제로 스코틀랜드는 왕의 모후인 마가렛 튜더와 그의 새로운 남편이자 친 잉글랜드파인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의 권세 하에 놓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이 부부의 도움을 입어 스코틀랜드의 내정에 교묘하게 간섭합니다.

어린 제임스 5세는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제임스 5세는 친 프랑스파 귀족들의 협조를 얻어 앵거스 백작과 그 세력들을 추방해버립니다. 







한편, 이 당시 스코틀랜드 왕가에서는 프랑스와의 오랜 동맹 관계에 기인하여, 전통적으로 왕이 프랑스 왕족의 여인과 결혼하곤 했습니다. 제임스 5세 역시 프랑스의 왕 프랑소와 1세의 딸과 결혼하고자 했으나, 프랑소와 1세가 자기 딸들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었죠.

이때 어떻게든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골몰하던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캐서린 아라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블러드 메리)와 제임스 5세와의 결혼을 제안합니다. 

당연히 제임스 5세는 거절하죠. 이어 제임스 5세는 끈질기게 프랑소와 1세에게 결혼 제안을 하고, 마침내 프랑소와 1세의 딸 마들렌이 결혼 제안에 승낙함으로써, 1537년 둘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들렌은 몇 달 후, 병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잠시 실의에 빠졌던 제임스 5세는 다시 프랑스 여인과의 결혼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유력 가문 기즈(Guise) 가(家) 출신의 마리 드 기즈(Marie de Guise)에게 청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최대의 복병이 등장합니다. 마리 드 기즈를 두고 제임스 5세에게 최대의 경쟁자가 나타난 것인데, 다름아닌 헨리 8세 였던 것입니다. 이 당시 헨리 8세는 앤 불린을 참수하고 제인 시모어와도 사별한 뒤라 홀아비였죠. 둘은 마리 드 기즈를 사이에 두고 첨예한 신경전을 펼칩니다.







그러나 마리 드 기즈는 제임스 5세의 품 안에 안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고 마리 드 기즈는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의 동맹관계는 더욱 공고해집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제대로 악화됩니다.

안그래도 눈엣가시같던 스코틀랜드였는데, 그토록 원하던 여인마저 빼앗기자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가 난 헨리 8세. 이번엔 종교적인 문제로 제임스 5세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1534년, 캐서린 아라곤과의 파혼과 앤 불린과의 결혼을 두고 로마 교황과 완전히 단절하고 수장령을 통해 '잉글랜드 국교회'의 수장임을 선언한 헨리 8세는 이번에는 제임스 5세에게 자신처럼 로마 교황과 단절하고 '스코틀랜드 국교회'의 수장이 되라고 끈질기게 압박합니다.

잉글랜드를 견제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와 교황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제임스 5세로써는 헨리 8세의 요구를 들어줄 하등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에 헨리 8세는 직접 조카를 만나 설득하기로 하고 요크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제임스 5세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제임스 5세는 이 전갈을 무시하고 요크로 나가지도 않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헨리 8세는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으로 프랑스군이 바빠진 틈을 타 "버릇없는 조카놈! 이번에 혼꾸녕을 내주마!" 라며 스코틀랜드를 침공합니다.


1542년 11월 솔웨이 모스 전투에서 헨리 8세는 자신이 벼렀던 것 처럼, 스코틀랜드 군을 박살냄으로써 조카를 제대로 혼내줍니다. 패전으로 낙담한 제임스 5세는 국경지대의 방비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임신한 왕비와 함께 린리스고 성으로 갑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1542년 12월 8일, 린리스고 성에서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 사이에 유일한 자식인 '메리 스튜어트'가 태어납니다. 이제 다음 화부터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의 인생역정이 펼쳐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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