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소금행진, 비폭력운동을 실천하다

간디의 소금행진, 비폭력운동을 실천하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 '소금세'라는 세금을 매겼다. 인도사람들은 영국이 생산한 소금만 먹을 수 있고, 소금을 사 먹을 때마다 영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법을 만든 것이다.

과자나 술처럼 안 먹어도 되는 먹을거리 이거나 귀금속 따위의 사치품이면 모를까 소금은 생명 유지를 위해서 누구나 섭취해야 하는 음식이다.
단식투쟁을 하더라도 물과 소금은 꼭 먹는다고 하는 소금!

인도에서 나지 않는다면 몰라도 영국 것만을 먹어야 한다니, 생필품인 소금에 대해서 조차 영국이 간섭하고 나서자 이런 억지에 화가 난 간디는 폭력이나 무력을 쓰지 않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소금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생산된 목화를 헐값에 사다가, 영국 공장에서 면제품을 만들어 식민지에 비싸게 되팔아 폭리를 취하는 영국을 향해 물레를 돌려 비폭력 운동을 시행했던 간디!

"아름다움으로 옷을 입지 말고 위엄으로 입읍시다".







말도 안되는 '소금세'에 대해 이번엔 간디가 나섰다. 간디가 이 소금법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소금이 있는 바닷가까지 행진을 하는 것이었다.
소금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간디는 인도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의무입니다."

이랬던 간디였으니, 소금법에 협조하지 않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간디는 1930년 3월 12일 사바르마티 아쉬람이라는 곳에서 시작해서 4월6일 염전이 있던 구자라트 주의 단디 해변까지, 장장 370Km를 26일간 '소금행진'을 시작 했다.

소금행진을 하던 1930년에 간디는 예순을 넘긴 나이였고, 단식 투쟁을 밥 먹듯이 하던 탓에 비쩍 마른 몸으로 26일 동안 모자도 없이, 맨발이나 다름없는 허술한 신을 신고 걸었을 모습을 상상해보자!


게다가 인도의 날씨는 4월부터 6월까지가 가장 더워 40도가 넘는 날씨였다.
얼마나 간디의 고생이 심했는지 보다 못한 사람들이 그의 행로 앞에 나뭇잎을 깔아 주었다고 한다.








처음 행진을 시작할 때는 7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떠났지만,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더니 단디에 도착할 즈음에는 인파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지열로 달아오른 땅을 타박타박 걸어서 끝내 해안가에 도착한 간디가 침묵 속에서 소금을 집어 올려 맛을 보는 행위는 인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혼의 울림을 전해 주었다.
진정한 마하트마 간디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행진 이후, 인도의 바닷가는 소금을 줍는 사람과 소금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영국인들은 이 사람들을 죄다 투옥했는데 그 수가 6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영국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비폭력으로 영국에 끊임없이 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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