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근교대제도_ 일본 애도시대의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 되다

참근교대제도_ 일본 애도시대의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 되다





장거리 이동과 원거리 유통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자극을 받은 것이 화폐경제입니다. 지역경제에서는 역내 물물교환 원리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화폐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대신 원거리 이동 시 기존에 화폐 역할을 한 미곡은 지불수단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다이묘들은 참근교대에 수반하여 언제고 필요할 때 지출을 할 수 있도록 미곡을 팔아 화폐를 마련해야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화폐 수요의 증대로 화폐경제가 발전하자 전국적인 거래의 편의성이 크게 제고되어 각종 상업경제 활동이 더욱 활성화되어 갑니다. 나아가 화폐를 이용한 비즈니스, 즉 금융업이 원시적인 형태이기는 하나, 일본 자생적으로 태동하고 발전하게 되는데...
영주들이 가을 수확을 기다리지 못하고 미곡을 담보로 하여 미곡업자에게 현금을 대출받는 대부업을 시작으로, 원격지 간 금융 거래를 위한 일종의 신용 예금 인출 서비스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가 차례차례 등장하고 확산되었습니다.
 
참근교대가 가져온 가장 큰 부산물은 에도의 눈부신 발전.
각 다이묘와 최고 엘리트 집단이 에도라는 한 도시에 거주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수만 명의 다이묘와 수행원이 ‘순수한 소비자’로 유입됨에 따라 에도에는 거대한 소비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저택과 숙소 및 공공 인프라 마련을 위한 토목·건설 등 건축업, 다이묘 일행의  교제생활을 위한 외식업, 공예업, 운수업,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이키(粹)’ 복식문화에 따른 섬유업과 의상업, 多衆의 문화생활을 위한 각종 출판업, 공연업과 향락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도시를 방불케 하는 활발한 상업 활동이 전개되는데,,,
 
참근교대로 형성된 에도 권역의 대중 소비시장은 도시 기능에 필요한 엄청난 인구의 에도 유입을 유발했고 전국적으로 조달된 각종 물산이 유통되고 대중 소비용 서비스가 제공, 에도는 이미 18세기 중반에 인구 100만이 거주하는 왕성한 상업 활동과 도시기반 시설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참근교대가 일본에 미친 영향은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가장 먼저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신분제도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지배층인 무사 계급의 지위가 흔들리고 초닌(町人)이라 불리는 상인 계급이 사회의 실세로 등장한 것이죠.
 
앞서 언급한 대로 참근교대에는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어 다이묘 재정에 큰 압박 요인이 되었으며, 이러한 지출은 곧 상인 계급의 부의 축적으로 이어져 신분제도를 흔드는 요인이 되고.  수많은 다이묘가 참근교대 비용 마련을 위해 오사카 등지의 상인들에게 쌀을 담보로 부채를 지며 화폐를 융통할 수밖에 없었는데 워낙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다 보니 부채가 변제 불가능 수준으로 늘어났고 사정이 어려운 다이묘들은 영지의 이권을 상인들에게 제공하고 정경유착을 통해 근근이 통치권을 유지하는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의무적 경비는 각 다이묘 재정의 경직화와 만성적 적자 체질을 초래하였고, 다이묘가 재정압박에 힘들어하는 만큼 에도에서의 소비는 확대되었고 화폐는 상인층에 흡수되었습니다.
 
대상인들은 축적한 부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투자하여 정부를 뛰어넘는 자체적인 인력과 조직을 갖춘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기존의 권위와 전통에 의지해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던 막부의 지배층과 달리 이들은 명분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력을 갖춘 변혁의 전위대로서, 훗날 근대화의 파도가 밀려왔을 때 일본이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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