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_ 제물포해전의 배경과 결과

러일전쟁_ 제물포해전의 배경과 결과






루든예프 함장은 일본함대의 맹렬한 공격을 돌파해 공해로 나가보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우리우 제독은 아사마함에게 추격명령을 내렸고, 아사마함에서 발사한 포탄이 바략함의 자동조종장치를 박살냈다. 수동조종을 할 수밖에 없게 된 바략함은 기동성이 떨어져 집중공격을 받았고, 결국 함정 곳곳에 구멍이 나 물이 새어들자 배가 좌측으로 기울어갔다.

뒤따르던 카레이츠함이 지원에 나선 것은 이때였다. 카레이츠함의 화력은 2문의 203mm 대포, 1문의 52mm포, 4문의 37mm포였다. 거의 한시간 동안 계속된 해전에서 카레이츠함은 한 발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우리우 제독의 작전이 바략함에 집중되었던 까닭이다. 공격이 이어지면서 앞 돛대에 떨어진 포탄 파편 하나가 루든예프 함장의 머리에 명중했다. 함장 옆에 서서 전투를 독려하던 나팔수와 고수(鼓手)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바략함에서는 루든예프 함장이 전사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겨우 의식을 회복한 루든예프 함장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군복 차림으로 다시 사령탑에 오른다. 러시아 수병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지만 승부는 이미 비관적이었다. 파괴될 만큼 파괴된 바략함은 전투를 계속할 수 없었고 적잖은 수병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결국 제물포로 후퇴하기로 결정한 루든예프 함장은 후퇴명령을 내린다. 나팔수의 신호음이 구슬프게 퍼졌다. 오후 12시45분, 전투개시 한 시간 만의 일이었다.






루든예프 함장은 이후 사령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후퇴 결정은 함정의 파손 부분을 급히 보수하고 부상자 대책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으며, 16시까지 다시 출항해 해전을 계속할 각오였다”고 말하고 있다. 바략함과 카레이츠함이 중립항인 제물포 내항으로 들어서자, 외국 함대의 개입을 우려한 일본함대는 추격하지 않고 배를 세웠다. 일본측의 해전기록은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바략함이 간신히 도주해 제물포 정박지로 들어가자 아사마함은 사격을 멈췄다. 팔미도 러일해전에서 일본함대는 적함의 포탄에 일발도 맞지 않아 전혀 손실이 없는 전과를 거뒀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기록은 다르다. 바략함은 전사자 34명(중상자 중 치료과정에 사망한 12명 포함), 경상자 105명, 중상자 91명 등 총 229명의 인명피해를 당한 반면, 일본함대는 전사자 30명에 부상자 200명으로 총 230명의 인명피해를 당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물론 두 가지 설명 중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제물포해전이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내고 양국 함대의 주력함에 치명타를 입힐 만큼 격렬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제물포항에 정박중이던 프랑스해군 파스칼함의 세네스 함장의 회고에서도 확인된다.

“바략함의 갑판은 피바다였으며 사방에 시체와 사지가 찢어져 널려 있고 함정은 어느 곳 한군데도 파손되지 않은 데가 없었다. 포탄을 맞은 곳마다 불에 타 있었으며 철판은 구멍이 나고 환풍기는 부서져 있었다. 선실과 침대는 화기로 뜨거웠고 포탄을 맞은 함교는 벌집이 되어 매달려 있었다. 후미에서는 하염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함정은 점점 왼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전투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루든예프 함장은 장교들과 협의하여 바략함을 일본에 전리품으로 주지 않기 위해 폭파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외국 군함 함장들에게 알린다. 외국 군함들은 일본함대의 최후통첩에 따라 14시까지 제물포항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폭파 연락을 받은 외국 군함의 지휘관들은 러시아해군 부상자와 생존자들을 자신들의 함정에 승선시켜 구조하기로 합의했다. 적십자 깃발을 매달고 의사와 위생병을 태운 보트가 바략함과 카레이츠함으로 달려왔다. 다만 미국 군함 빅스버그함의 함장 마셜 중령은 “서울 주재 알렌 공사로부터 지시가 없고 선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구조를 거부했다.

바략함 승선자들의 대피가 끝나자 루든예프 함장은 영국 함장 베일리 대령에게 폭파를 시작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위에 정박중인 외국함에 파편이 튈 것을 염려한 베일리 대령은 폭파대신 급수용판을 여는 방안을 권한다. 결국 바략함은 전사자들과 함께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40분 만에 수십 구의 러시아 수병 유해와 최신식 순양함 한대가 제물포항에 완전히 수장되었다.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카레이츠함도 온전한 상태로 제물포항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카레이츠함 역시 일본함대에 넘겨주지 않으려면 자폭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외국 함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약간 먼 곳으로 나간 카레이츠함은 폭탄을 터뜨려 폭파시켰다. 여객선 순가리호는 동청철도 제물포 지사장과 합의하에 방화해 침수시켰다. 이로써 러시아의 전 함정은 수장되었다.






근대 이후 최초의 동양과 서양의 전쟁이었던 제물포해전은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났다.
패전과 자폭은 러시아로서도 썩 유쾌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러시아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누구나 역사 교과서에서 이 사건을 배우며 제물포 해전을 ‘러시아인의 기개를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한다.
2002년판 러시아 역사 교과서는 이 사건의 시대적 배경과 교전 전후 상황을 상술하고 있다. ‘함장과 장교들은 일본 함대와 교전 직전 작전 실패시 함정을 폭파하고 어떤 경우에도 일본에 함정을 전리품으로 주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정신력과 의식은 살아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더 러시아인의 혼을 빛냈다’고 가르치고 있다.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귀환한 러시아 군인들을 알현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1959년에는 콤소몰 공원 광장에 바략호 함장 르도네프의 동상이 세워졌다. 또 제물포 해전은 ‘바략’이라는 영화로 제작됐으며 이를 기리는 노래까지 만들어졌다. 이 노래는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부르고 있다.

동지여, 승선하라! 모두 제위치로!
우리의 마지막 행진이 이제 시작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바략'은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누구도 자비를 구걸하지 않는다.

돛이 바람에 부풀고, 사슬들이 쩔렁인다.
닻들을 끌어올린다.
함포들을 전투위치로 늘어놓으니,
햇볓에 그들이 눈이 부시다.

주변엔 휙휙대는 소리, 우뢰소리, 쨍강이는 소리.
총이 불을 뿜고, 총탄이 바람을 가른다.
우리의 두려움을 모르는 '바략'이
지옥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리라!

시체들이 단말마로 부르짓고,
총이 불을 뿜고, 비명,탄식.
배는 불바다로 뒤덮인다.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안녕히, 동지여, 신이 함께하길 - 후랴!
거품이 이는 바다가 우리 아래 있다.
오랜 친구들아, 우리가 함께 한다. 어제는
우리가 파도아래 잠길지 생각하지 않았다!

돌도 십자가도 우리가 죽은 곳을 표시하지 않네
러시아의 깃발의 영광을 위해,
오직 바다의 파도만이 기억하리오,
'바략'호의 영웅적인 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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